인천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3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올해 들어 전세보증금 때문에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인천에서만 벌써 세 번째다. 모두 50일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17일 새벽 2시10분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ㅅ아파트 12층에서 박 아무개(3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유서로 추정되는 쪽지가 발견됐다.
쪽지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평소 일을 하느라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숨지기 전날에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이 이웃들에게 목격됐다. 이 아파트 동대표 김 아무개 씨는 “2주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도 ‘일단은 버티고 살아보자’고 대화를 했는데, 아침에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라고 했다.
박씨는 2019년 9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남아무개(61)씨 일당에게 전세보증금 7200만 원을 건네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후 박씨의 전세보증금은 2021년 재계약 과정에서 9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집주인 남 씨가 집을 살 때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법원은 이 집에 대해 지난해 3월 29일 임의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낙찰이 이뤄지지 않아 퇴거 압박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였다. 2021년 재계약 과정에서 보증금을 올려준 탓에 ‘8천만원 이하’로 정해진 전세보증금 최우선 변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찾아간 박씨 집 현관 앞 종량제 쓰레기봉투에는 “수도요금이 체납입니다. 120번 확인 후 납부하세요. 미납 시 단수합니다”라는 손글씨가 적힌 상수도 요금 독촉장이 버려져 있었다.
박씨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이달 초 대책위 단체 대화방에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펼침막이 떨어져 있어 이를 다시 걸어놓겠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대책위 관계자는 “전세금을 떼이게 돼 많이 힘들어했다. 어렵게 생활하는 중에도 피해 구제를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앞서 인천에서는 지난 2월28일 박 아무개(38)씨가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4일에는 전세사기 피해자 20대 임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모두 ‘건축왕’ 남 씨가 연루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들은 관계당국에 법원의 경매 절차 돌입부터 막아달라고 호소한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전세사기에 휘말린 10채가 경매에 넘어가 낙찰됐다.
‘건축왕’ 남씨가 소유한 2700여 채 가운데 65%가 경매 대기 중이거나 경매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대책위는 파악하고 있다. 김병렬 피해대책위 부위원장은 “당장 (경매 중지를 위한) 법 개정 절차에 돌입한다고 해도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에 경매가 낙찰되면 우리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 경매 중지가 어렵다면 임차인에게 경매에서 낙찰될 우선순위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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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남씨는 지난해 1월부터 7월 사이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 계약한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보증금 125억 원을 가로챈(사기) 혐의로 지난달 15일 구속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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