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특별법안에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와 보증금 회수 방안을 포함해 달라는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전세 위기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집값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져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새 임차인을 구해도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내주기 어려운 역전세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임차인을 속여 전세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보증금을 떼어먹은 전세 사기도 다수 나타나고 있다.
전세 사기는 대체로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선순위채권이 있음에도 임차인을 속이고 전세보증금을 다른 사업에 투자해 떼먹은 유형이다. 전형적 폰지 사기로 인천 미추홀구가 대표 사례다. 둘째는 서울 강서구 사례처럼 임대차계약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입주 뒤 임대사업자가 조세를 체납해 임차인 모르게 주택 압류를 당한 경우다. 임차인은 선순위 조세채권이 개별 주택가격보다 커서 경매의 실익이 없어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도 못 가는 상태다. 셋째는 임대차계약 당시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과 의도 모두 없는 무자본 갭투자(전세 낀 매매)다. 전체적으로 집값과 전셋값 하락으로 깡통전세, 역전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기를 쳤어도 집값과 전셋값이 계속 올랐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세 위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공고해지면서 아파트 공화국, 부동산 계급사회가 됐다. 월세보다는 전세, 전세보다는 자가 선호가 강하다. 은행은 임차인의 상환능력을 따지지 않고 보증금의 80~90%까지 대출해 줬다. 임차인의 전세대출은 임대인이 주택에 투기하는 자금으로 이용된다. 주택도시보증은 깡통이 될 위험이 큰데도 공시가격의 150%, 즉 집값의 100%까지 보증금의 반환을 보증했다. 전세금에 대해선 세금도 건강보험료도 나오지 않는다. 전세를 정상적 주택임대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전세대출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했으며, 주택도시보증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2013년에 박근혜 정부가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을 제정해 기업형 주택임대사업자 활성화를 꾀했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추가했다. 전세 위기의 씨앗을 뿌린 정부와 약초인지 독초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키운 정부 모두 책임을 면키 어렵다.
임대차 3법 통과 이후 전셋값은 폭등했고 전세대출과 보증금반환보증이 불을 지펴 전세 사기의 온상이 됐다는 게 현 정부 여당의 주장이다. 임대인이 선순위채권을 속일 수 있는 것이 임대차 3 법 때문인가? 임대차계약 이후 조세를 체납한 것도 임대차 3 법 때문인가? 보증금 상환능력이 없는 임대사업자가 갭투기를 벌인 것이 임대차 3 법 때문인가? 전세 사기는 꾸준히 있었고, ‘갭투자’는 2015년경부터 뉴스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렸다.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셋값이 올랐다면, 임대차 3 법이 여전히 살아있는 지금은 왜 전셋값이 하락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빚내서 집 사라, 빚내서 전세 살라”는 저금리 대출 확대에 이어 코로나19 대유행기 동안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 유지와 통화량 급증으로 대부분 선진국에서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 국제 학계의 정설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금리가 오르고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깡통전세와 역전세, 전세 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세 위기가 크게 대두하기 이전인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뜬금없이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라고 자화자찬했다. 그게 사실이면 윤석열 정부가 집값과 전셋값을 떨어뜨려 지금의 전세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말이 된다.
전세는 보증금이 갭투기 자금이 되고, 전세난이나 역전세와 깡통전세 등 피해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취약한 제도다. 전셋값을 집값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거나 보증금 보증비율의 상한을 정해 집값이 하락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전세보다 월세를 더 선호할 수 있도록 월세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다양한 주체와 유형의 공익적 임대주택도 늘려야 한다. 정부 여당은 전세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보다 우선 피해자 구제와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전세 위기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보증금 신용위험 개인 전가…전세자금 대출 무분별 확대
2. 전세사기, 원인은 무엇인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국회 앞에서 법안소위를 통과한 특별법안에 피해자 인정범위 확대와 최우선변제금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증금 회수 방안 포함 마련을 담은 수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 피해를 아무런 대가 없이 보상해 주면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 세금을 소수의 국민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재정원칙 등이 정부의 입장을 잘 설명한다.
하지만 전국적 전세 사기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피해자들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일부라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데 있었다면 정부의 개입은 더욱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먼저 1천조원에 이른다는 전세보증금과 관련한 위험을 관리하는 데 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전세 제도가 없는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통상 1, 2개월 치의 월세에 상당하는 월세 보증금조차 별도의 신탁에 예치하도록 엄격히 강제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전세 보증금을 개인 간 계약으로 치부하고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전세 보증보험 제도가 있으나, 가입을 강제하지 않았기에 임대인과 중개인이 임차인의 가입을 막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임대인이 이미 보증사고를 일으켜 보험 가입이 불가능했거나, 보험에 어렵사리 가입한 경우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최근 보증사고의 급증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총생산의 50%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는 보증금 관련 위험을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즉, 정부는 국가나 금융기관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신용위험을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이 부담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조차 보증금 상승에 맞춰 빠르게 상향 조정하지 않았다.
둘째, 정부는 주거비 상승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부동산 금융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 집값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으나, 한국의 상승률은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권이었다. 특히 집값 상승이 수도권에 집중되다 보니 주변에서는 100%가 넘는 폭등 사례 또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주거비는 서민들이 부담하는 가장 거액의 지출이고 생존을 위해서는 회피할 수조차 없으므로, 이러한 주거비의 상승은 매우 고통스럽고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소비자물가는 2%의 안정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동산가격은 경착륙 방지라는 명목하에 가격 하락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대출 규제를 강화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 규제는 지난해 7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본격 도입되기 전까지 대출금이 폭등하는 주택가격에 비례하는 주택담보비율(LTV)에 기반해 이뤄졌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일부 고려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병존하기는 했으나, 대출한도를 계산하면서 만기를 30년 장기로 늘리거나, 비주택 담보대출을 차주가 보유한 기존 대출금에 포함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이 제도를 무력화했다. 더군다나 전세자금 대출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주택가격을 넘어서는 약탈적 대출이 이뤄졌다.
사기범들은 임차인들에게 실행된 대출금을 보증금으로 받아 갭투자하는 방식으로 보유 주택 수를 무한정 늘릴 수 있었다. 대출 규제를 차주의 상환능력에 기반한 방식으로 좀 더 빨리 전환했더라면, 그리고 2014년 이후 서민의 주거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오지 않았더라면, 비정상적인 거주 비용의 폭등과 이에 기반한 전국적인 전세 사기는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혹자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더 저가의 거주지를 선택했더라면 이런 파국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실한 가장과 그 가족이 서민형 주택에 거주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의 주거비가 왜 이렇게 폭등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주거 안정을 위해 요구되는 필요하고도 당연한 역할을 다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난 부동산 폭등기에 정부, 국회, 언론, 그리고 집값 상승의 이익을 향유했던 모두가 전세 사기범들과 공범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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